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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박물관의 발달사이다.
인류가 과거 유물을 수집하고 보전하며 특정 활동을 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나타났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도서관들의 파피루스 수집, 바빌로니아 제국의 골동품 수집, 미술관의 실질적인 원초형으로 보는 아크로폴리스의 피나코테카 등이 그 증거이다. 통상적으로 인류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전 295년에 이집트 왕 프톨레미 1세 소테르가 알렉산드리아를 세계 지식의 수도로 만들기 위해 주도한 알렉산드리아 뮤제이옹이다. 아홉 자매여신인 뮤사(뮤제)가 전시된 전당은 철학자들(필라델푸스)의 명상 장소이자 그리스의 문예, 철학 등을 연구하고, 조형예술품과 서적을 수집하거나 동식물을 연구하고, 공연하는 등 다목적 기능을 수행한 장소로 오늘날 문화예술 기반 시설의 시원으로 볼 수 있다. 로마 정교교회로 바뀔 때까지 약 700년의 세월 동안 그 역할과 기능을 지속했다.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한 기원전 334년부터 고대 그리스와 아시아의 고유문화 및 인종이 융합되어 문화변동으로 탄생하였으며, 그리스가 로마에 병합된 기원전 30년까지 약 300년간 지속되었다. 헬레니즘 시대가 끝나고, 페르가뭄 왕국의 앗탈로스 1세는 페가메논의 아크로폴리스를 위해 헬레니즘 조각과 그림을 다량으로 수집하였다. 로마군은 정복한 그리스 지역의 예술작품을 전리품으로 약탈하여 자신들의 신전에 봉납하거나 부와 교양을 과시하기 위한 개인 소장품으로 취하고, 미술품과 고대 유물의 거래가 시작되고 복제가 극성기를 맞았다. 로마 하드리안 황제의 하드리안의 빌라를 야외박물관의 원초형으로 인정한다. 중세시대에 들어서자 미술품은 세속적인 가치를 가진 탐미의 대상에서 천국을 가기 위해 교회에 봉납하는 종교적 성격을 띠는 교회의 보물이 되었고, 이는 중세 봉건시대에 미술품이 오로지 종교(신)를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보고다.
중세시대와 대조적으로 문예부흥기(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들의 문화적 근원을 찾기 위해서 고전주의 예술에 대해 주목하였으며, 고대 유물에 대해 열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근대박물관 발달 초기에는 메디치 가문이 크게 이바지했다. 로렌초 드 메디치에 의해 15세기 이전까지 주로 철학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 라틴어 박물관(musaeum)의 의미가 ‘진기한 수집품’으로 바꾸었다. 또한, 1474년 코시모가 메디치 가문의 미술품 수집과 더불어 새로운 작품 생산을 위해 피렌체에 만든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는 근대 미술학교의 시원으로 인문·예술연구의 산실이었다. 베키오궁을 건립하여 메디치가의 소장품을 전시함으로써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메디치 가문을 시작으로 신흥 부르주아들의 미술품에 관한 관심은 예술작업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져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이바지하였다. 피렌체의 정부청사였던 우피치에 채광을 고려한 근대 미술관의 원초가 되는 갤러리아를 만들었고 1591년부터 관람할 수 있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체계적인 수집품’을 뮤지엄이라 하고, 공공박물관의 효시인 1683년 애쉬몰리언 박물관이 공중에게 공개되며 박물관은 ‘수집품을 보관·전시하는 건물’을 뜻하게 되었다. 한편, 대학박물관의 효시는 스위스 바젤대학교이며, 17세기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절대군주들과 신흥 자본가들의 미술품 거래가 증가하였는데,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 위작과 모작이 나타나고 시장에 유통되었다.
1667년 루브르궁 대 살롱에서 최초의 전람회「프랑스 아카데미 전람회」가 직육면체 회랑의 갤러리 형태로 개최되었다. 1964년 브장송시가 프랑스 최초의 공공미술관을 개관하였고, 라퐁 뒤 생예니가 루브르에 국립미술관 건립을 주장하여 1750년부터 국왕 걸작품 100점을 뤽상부르그궁의 4개 살롱에서 전시함으로써 파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공미술관의 효시가 되었다. 1773년 미국에서 최초로 찰스톤박물관이 설립되었고, 1805년 미국 최초의 근대 미술관인 아카데미 아프가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1832년 설립된 트럼벨미술관이 처음으로 미술관을 뜻하는 갤러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1788년에 루이 14세가 나폴레옹이 해외 원정에서 갖고 온 전리품과 약탈품을 중심으로 루브르궁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며 설립되었다. 당시 약탈품은 전쟁의 승리품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영 나라가 약소국과 식민지로부터 약탈했다. 일반 대중들에게 공식적으로 공개한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과거 제한적으로 공개한 애쉬몰리언과 다르다. 1797년 독일의 빌헬름 2세에 의해 베를린에 고대박물관 건립이 추진되었는데, 힐트 교수가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박물관 건립계획안을 제안하였고, 과학적인 기능 위주 박물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은 영국인 제임스 맥키 스미스소니언이 죽으면서 미국 의회에 유증한 기금으로 1846년에 설립되었다.
7개의 박물관과 연구소, 국립동물공원 등으로 확대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특수법인 박물관이다. 1845년 영국의 박물관령이 공포되었다. 그 이후로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어 전 세계적으로 건립이 확산되었다. 1851년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인근에서 개최된 세계 최초 박람회 ‘수정궁박람회’가 끝난 후 수집품을 활용하여 1852년에 제조박물관을 개관하였다. 1856년 게르만박물관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게르만 문화선양을 목적으로 설립을 기획하고, 시대별·장르별로 구분한 박물관기술학적 관점에서 가장 체계화된 박물관이다.
창립년도를 기준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인도 자카르타의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식민지 영향으로 1778년 왕립바타비아예술과학학회 설립자인 네덜란드 수집가 레이드마쳐의 기증으로 1868년 인도네시아 국립중앙박물관이 공식 개관하였고, 1979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칭되었다. 이후에도 인도는 동양박물관(1814), 바로다박물관(1894) 등 영국의 영향으로 박물관 활동이 왕성했다. 일본은 16세기부터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일찍 개화하였고, 1757년 에도 유시마에서 박람회를 개최하고, 후쿠자와 유키치가 미국·영국에 사절단으로 다녀온 후 엑스포를 박람회로, 뮤지엄을 박물관으로 번역하여 아시아에 전파하였다. 박물원’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왕타오가 1867년 『만유수록』에서 museum을 박물원으로 번역하여 소개하였고, 중국은 식물원으로 시작하여 박물관이 되었다. 1932년 영국왕립아주문회 건물이 완공되어, 상하이 박물원이 개원되고, 이것이 상하이 박물원의 효시가 된다. 중국인에 의해 시작된 것은 난퉁박물원이 최초이고, 추후 국립기관으로 발전한 것은 고궁박물원이며, 실제로 중국의 핵심적이고 진귀한 문화재는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 개념의 도입과 전파는 1876년 제1차 수신사 김기수와 1895년 유길준을 통해 들어왔다. 한국 최초 근대시설을 갖춘 이왕가 박물관의 건물은 1909년 9월에 창경궁의 자경전 터에 건립되었다. 그 자리에 착공되었던 박물관은 제실박물관에서 1936년 덕수궁에 이왕가 박물관이 건립되며 1938년에 장서각으로 바뀌고, 1986년에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명맥이 유지되다가 1992년 창경궁 복원 사업으로 철거되어 지금은 자리만 남아있다. 박람회로 시작하여 박물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역사교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박람회가 박물관으로 남아있지 못해 아쉽다.반응형'내가 한 공부들 > 박물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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